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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모금캠페인 화룡점정: G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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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망고포스트(mangopost)
  • 승인 2021.01.12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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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 서로의 삶을 이어내는 생명의 끈

  고려대안암병원 내분비내과 김신곤 교수

 젊은 여성이 진료실에 찾아왔다. 환자는 아닌 듯 했는데 명함을 내밀었다. 로펌의 변호사였다. 모교를 졸업한 후배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언니를 살려달라고 했다. 언니는 거식증으로 음식을 거부하고 있는데 지금 상황이면 얼마를 못 버틸 것 같다고 했다. 얼굴에 비친 눈물이 아침 이슬처럼 반짝거렸다. 환자를 억지로라도 입원시키기로 했다.

입원실에서 만난 환자는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키는 160
cm였는데 체중은 30킬로그램도 안되었다. 옆으로만 누워있다 보니 눌린 쪽 골반에 욕창이 보였다. 압력으로 피부가 괴사 되는데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살고 싶은 의욕이 보이지 않고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진찰을 위해 자세를 변경할 때 경직된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에 표정이 일그러졌을 뿐이다. 

거식증으로 알려진 신경성 식욕부진증
(Anorexia nervosa)은 흔히는 마른 몸매에 대한 강박으로 음식을 거부하는 병이다. 영양결핍으로 심장이나 콩팥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심한 경우에는 이로 인해 사망한 예도 있다. 영양이 넘치는 시대에 역설적인 질환이라 볼 수 있는데, 우울증 같은 정신적인 문제를 동반하며 치료하기가 쉽지 않은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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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영양제가 포함된 주사제도 거부했지만 혈압이 낮아 위험한 상태였기에 본인의 의사에 반해 강제로라도 투입해야 했다. 매 회진 때마다 식사를 시작하도록 종용했지만 설득되지 않았다. 환자의 침상은 어머니가 매일같이 지켰다. 1인실에 입원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였기에 간병인의 도움을 받을 법도 했는데 어머니는 하루도 빠짐 없이 병상을 지켰다. 휴일의 경우 작은딸에게 잠깐 맡기고 집에 다녀오는 것 이외에는 병상을 떠난 것을 본 적이 없다. 

모친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웃음기를 볼 수 없었다. 이해할 만 했다. 하루하루 죽음으로 나아가는 딸의 선택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생명의 산출자이자 평생에 걸친 양육자였던 어머니의 입장에서는 그런 딸을 보면서도 해줄 것 없는 자신이 못내 한탄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무력감이 하루도 빠짐없이 병상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가져 왔는지도 모른다. 

입원 기간이 한달을 넘겨가면서 건강상태는 조금씩 나아졌지만 입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은 여전히 거부하고 있었다. 정신건강의학과의 면담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언제쯤이면 스스로 음식을 먹을지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햇볕도 싫어해서 방은 항상 어둠 컴컴했다. 이렇게 평생 병원에서 링거 신세를 지며 살아가게 해야하나. 내 마음도 답답하고 암울한데 모친의 심정은 어떨까 싶었다.

그 때 우리 병원에는 캄보디아에서 온 쌈낭이라는 생후 14개월된 아이가 입원하고 있었다. 캄보디아에 의료봉사를 나간 후배 의사가 카톡으로 문자와 사진을 보내온 게 시작이었다. 사진을 보니 선천적인 항문막힘증
(imperforate anus)으로 태어난 아이였다. 캄보디아에서 급한대로 대장을 배쪽으로 연결시켜 장루를 만들어서 배변이 흐르도록 해놓은 상태였다. 본격적인 치료를 위해 우리 병원으로 데려오게 했다. 수술은 2단계에 걸쳐 진행되었다. 먼저 항문을 재건하고 기능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 후에 배쪽으로 연결된 대장의 장루를 닫는 수술을 했다. 생후 14개월만에 처음으로 힘을 주어가며 제대로 된 변을 본 아이는 쾌변감에 활짝 웃었다. 내원 당시에만 해도 뼈가 앙상할 정도로 말랐던 아이는 조금씩 살이 불어 이제 제법 볼도 통통해보였다.

어느 날 회진 때 쌈낭의 이야기를 꺼냈다. 이역만리에서 온 아이는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어서 앙상한 몰골로 우리 앞에 나타났는데, 그 어머니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상상해보라고 했다.

“쌈낭에게 인공항문이 만들어져 잘 먹게 되고 살이 붙으니까,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표정이 너무 환해졌어요.”

그러면서 쌈낭과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던 아이와 먹을 것 천지인데 먹지 않고 있는 자신을 생각해보라고 했다. 매일같이 병상을 지키며 딸의 고통을 자신의 마음에 아로새기며 어두운 낯빛으로 살아가고 있는 모친은 무슨 고생이냐고 얘기했다.

“안먹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왜 어머니는 그런 어둠 속에서 살아야 하나요? 개인 생활은 전혀 없이 항상 따님 옆을 지키는 간병인, 그것도 매일매일 고통을 아로새기며 간절한 마음으로 따님의 식사를 고대하는 어머님은 무슨 죄란 말입니까?”

“…”

“본인이 조금만, 조금만 노력하면 쌈낭 어머니의 얼굴이 환해진 것처럼, 어머님도 어둠의 터널에서 나와 밝은 생활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아무 말도 안했지만 미간이 움직였다. 쌈낭과 자신, 그리고 두 모친의 이야기가 조금은 가슴 속에 다가왔을 법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먹기 시작했다. 많은 양은 아니었고 음식 종류에 따른 거절도 있었지만 그래도 큰 변화였다. 전신 상태도 더 나아져 침상에 걸터앉을 정도가 되었다. 어느 날은 얘기 중에 잠시만요 하더니 빠르게 화장실에 갔다. 이제 거동도 가능해진 게구나. 곧 퇴원하면 되겠다는 생각에 흐뭇해졌다.

마침 추석 명절이었다. 모친은 작은 선물이라고 내 손에 안겨주었다. 

“그…쌈낭 있잖아요. 그 아이 치료비가 모자란다면서요. 거기에 써주시면 좋겠어요. 쌈낭이 우리 아이를 살렸잖아요.”

그랬다. 쌈낭의 치료비가 예상보다 많이 나왔다. 소아인데다가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을 두 번 받았다. 거기에 외국인이니 건강보험도 없었다. 치료비용이 예상보다 많게 나와 적지 않은 차액을 모금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런데 꼭 그 차액 만큼을 기부해 주신 것이다. 타국에서 온 먹고 싶어도 먹지 못했던 어린아이와 먹을 수 있어도 먹지 않았던 이 땅의 여성. 죽음으로 가는 여객선의 동승자였을 법한 두 사람은 어느덧 서로의 삶을 이어내는 생명의 끈으로 엮이게 되었다. 이런 우연 같은 필연을 나는 섭리라 믿는다.

퇴원할 때가 되었다. 한가지 소원이 있다고 얘기했다.

“퇴원해서 잘 먹게 되면, 그래서 나들이도 가능한 상태가 되면요. 밖에서 어머니와 함께 멋진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요. 그 때는 꽃단장하고 나오는 거예요. 그 소원 들어주면 정말 좋겠어요.”

환자는 말이 없었지만 어머니는 환하게 웃으셨다. 그런 웃음을 꼭 다시 보고 싶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났다. 환자의 상태가 궁금했다. 병원에 나타나지 않은 이상, 건강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리라.

추석 즈음에, 진료실에 누군가에 문을 열고 들어왔다. 퇴원한 환자의 모친과 여동생이었다. 

“선생님, 누군지 기억 하시겠어요?”

“기억하다 마다요.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어떻게 지내나요?”

“잘 먹지는 않아도 지가 좋아하는 빵 조금씩은 먹으면서, 병원 신세 안질 정도로 지내고 있어요. 선생님과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나타나지 못하고 있었는데...궁금하실 것 같아서 찾아왔어요.”

아, 약속이 있었지…이번에도 작은 선물이라고 두고 가셨다. Grateful patient philanthropy. 서구에서는 잘 알려진, 진료 후 감사의 마음으로 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번의 기부도 또 다른 생명을 살리는 끈이 되었다. 이번에는 북녘의 아이들을 살리는 일로 연결되어, 영양장애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두유를 공급하는 일에 소중하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끈으로 엮인 누군가가 또 다른 이의 생명을 살리는 이어짐으로 연결되리라 믿는다.

그 다음 해 년말에도 환자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두 모녀는 다녀갔다. 여동생이 작은 부탁을 했다. 언니를 위해서 짧은 메시지를 말씀해주실 수 있겠냐고. 조금은 쑥스러웠지만 즉석에서 핸드폰으로 영상을 녹화했다.

“약속 잊지 않고있죠? 꽃단장 하고 환한 모습으로 밖에서 식사 한번 하십시다. 어머니 모시고 말이예요. 꼭이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다음해 년말에도 역시 환자 없이 모녀만 다녀갔다. 이제는 집안에서도 잘 걸어 다닌다고 했다. 영상 녹화가 또 필요하지 않냐고 했더니 동생이 웃으며 말한다.

“지난번 영상 반복해서 보고 있어서 괜찮아요.”

두 모녀는 내가 생명을 살려낸 것으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정작 나는 도움을 준 것이 별로 없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어머님의 지극한 정성이 길을 낸 것이다. 모친의 정성이 생명을 살린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모녀가 함께 진료실에 나타났다. 이번에는 모친과 환자였던 당사자였다. 5년 만에 만난 환자는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 좀 늙었죠?” 

아니라고, 마른 얼굴에 살이 조금 붙어 이제는 오히려 젊어 보인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걸어서 환자가 아닌 모습으로 찾아와서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얕은 미소가 얼굴에 번졌다. 대화 내내 모친의 얼굴에 환한 표정이 떠나지 않았다. 말하는 나와 듣는 두 모녀 모두의 눈가에 작은 눈물이 맺혔다. 

 

<수상소감 - 고대안암병원 김신곤> 

 

진료 현장은 단지 질병과 의사가 만나는 장이 아닙니다. 질병의 가진 환자와 의사가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공간이기도 하지요. 때론 환자의 인생이 울림이 되어 내 삶 속으로 공명됩니다. 그 중 압권은 질병이라는 인생의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어낸 환자들의 이야기입니다. 절망이 희망이 되고, 슬픔이 기쁨이 되는 역설입니다. 때론 비극이 비통으로 종결되는 가슴 시린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환자들 옆에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기나긴 투병 과정 속에서 가족의 가치와 소중함을 깨우쳐준 이야기도 있고, 가난이라는 형벌이나 가족 간의 불화로 치료를 포기한 안타까운 사연도 있습니다. 환자들과 가족들의 삶이 빚어내는 온갖 빛깔의 스토리가 내 인생에도 중첩됩니다. 

환자의 투병 과정 중 여러모로 으뜸인 가족은 어머니입니다. 이 땅의 어머니는 강합니다.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이 생명을 출산하고, 지극한 정성이 때론 죽어가는 생명을 소생시키기도 합니다. 기나긴 투병 과정에서 다른 가족들이 모두 지쳐 나가도 마지막까지 자식을 향한 생명의 끈을 놓지 않는 존재는 역시 어머니입니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 길을 만들고, 죽음으로 향하는 열차를 온 몸으로 막아내기도 합니다. 이 글은 그런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입니다. 

진료 현장에서 만난 많은 분들을 통해 나는 오늘도 배우며 앞으로 걸어 갈 길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나는 환자와 그들의 가족이라는 스승들에게 빚진 존재이지요. 안식년 기간 동안 그런 스승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기억이 옅어지기 전에 기록해 놓지 않으면 소중한 가르침들이 잊힐 것 같아서였습니다. 아직은 세상에 내놓을 생각이 없었는데 코로나19 사태를 경험하면서 이 사연만은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한 생명이 다른 생명과 잇대어 있고 너와 내가 공존하고 있음을 코로나와 싸우며 배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생명이 다른 생명을 자라나게 하고, 그 이어짐은 또 다른 생명을 소생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은 살림입니다. 공감과 나눔을 통한 살림, 그 생명을 살리는 끈의 중단 없는 이어짐을 소망합니다. 이 글과 상금이 그런 생명의 끈을 이어내는 도구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전문적 훈련을 받아본 적 없는 부끄러운 글 솜씨인데, 좋게 평가해 주신 심사위원들과 이런 장을 만들어주신 청년의사와 한미약품에게 감사드립니다.

출처 : 청년의사
(http://www.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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