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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기부 역사와 기부문화의 방향성
한국 근대 기부 역사와 기부문화의 방향성
  • 박정우
  • 승인 2019.04.25 14: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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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대 의과대학 학장 이승훈 교수 인터뷰
이승훈 교수가 연세대 필란트로피의 실제에서 한국 근대 기부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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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훈 교수가 연세대 필란트로피의 실제에서 한국 근대 기부역사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 중에 필란트로피의 역사를 연구하고 강의하는 을지대 의과대학 학장으로 계시는 이승훈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 하였다. 

이승훈 교수는 연세대학교 필란트로피의 실제에서 한국 근대 기부 역사에 대한 강의를 통하여 한국 국민성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자발적 기부 문화적인 심성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앞으로 한국 기부문화의 재 발견과 발전을 위하여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소신을 전하고 있다. 

1. 필란트로피를 처음 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국립암센터 재직 당시 암퇴치백만인클럽에서 모금 캠페인을 맡아서 암과의 전쟁이라는 특집방송으로 ARS 회원 모집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였고 희망제작소 모금전문가학교에서 두차례에 걸쳐서 모금에 대한 공부를 하는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2. 교수님의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한국 팔란트로피스트들의 역사에 대해 
인상깊었는데요.  한국의 필란트로피의 개선점 있다면  뭐라고 생각 하십니까?

저는 우선 우리나라의 기부문화 모금운동의 뿌리가 무엇인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흔히들 경주 최부자 등 재산가들의 노블레스 오브리제에 대한 이야기는 알려져 있었지만, 소액 기부자들에 의한 모금 캠페인은 알려져 있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모금 캠페인은 1896년 실시된 서재필박사의 독립문 건립 모금운동이고, 신문에 의한 모금, 기부자 예우, 모금 회계 공개가 이루어졌습니다.

기부자 2000여명 중 대부분이 소액 기부자였으며 독립문을 일년만에 건립한 성공한 모금 캠페인이었습니다. 이런 전통이 국채보상운동과 수많은 민족학교의 건립으로 발전되었습니다.

1907년 일어난 국채보상운동은 구국의 정신과 금연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전국적으로 펼쳐진 근대 사회서 유래가 없는 모금 운동이었습니다.

비록 일본의 방해 공작으로 그 뜻을 다 이루지 못하였지만, 총 31만 7천명이 기부를 하고 그중에 1원 미만의 소액기부자가 85% 이상을 차지하는 민족적인 풀뿌리 모금이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일제는 1909년 이완용 등을 통하여 기부금품모금취체규칙이라는 법을 제정하여 독립과 민족계몽운동을 위한 모금을 철저하게 방해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한 민족단체의 활동을 방해하기 위해서 관변단체를 설립하고 이를 통해서 빈민구제, 전쟁물자 등을 위한 반강제적인 관제모금을 자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법이 해방이되고도 그대로 남아 있게 되고, 그것이 지금도 기부금품모금법의 모법으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독재국가에서 민주화되고 수준 높은 시민운동의 여건이 마련되었기 때문에 모금 관련법들이 모금자들에게 자율성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 앞으로의 한국 필란트로피가 나아갈 방향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가 깨닫게 된 점은 우리 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모금 정신이 강한 나라였고, 모금 선진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와 혼란한 해방과 전쟁 그리고 독재정부를 거치는 동안 그 정신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도 민주화되면서 IMF 당시 금모으기운동으로 그 정신이 살아나고 시민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새로운 회복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랑스러운 역사를 되살려 모금 선진국으로 가야하고, 그 과정에 없어지거나 개선되어할 법과 제도는 없는지 모두가 함께 토론하고 뜻을 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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